728x90
반응형
이 건물은 이서(李緖)의 재실(齋室)이다. 이서는 태종의 고손이며 양녕대군의 증손으로 중종 2년(1507) 이과(李顆)의 옥사(獄死)로 인하여 전라도 창평으로 유배되었다가 그 후 14년 동안 귀양살이 끝에 풀렸으나,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 담양군 대덕면에서 일생을 마쳤다. 유배시절 그의 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두현운산장, 한창세월다, 금명금야몽, 비도한강파
(斗縣雲山壯, 寒窓歲月多, 今明今夜夢, 飛渡漢江波)’
몽한각은 양녕대군의 후손들인 당시 담양부사 이동야(李東野)와 창평현령 이훈휘(李薰徽) 등이 이 지방에서 관직을 보내면서 오랫동안 이서공(李緖公)의 재실(齋室)이 없음을 알고 순조 3년(1803)에 현재의 몽한각(夢漢閣)을 건축하였다고 한다.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