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플리니우스는 트라야누스에게 이렇게 호소한다. "전쟁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하지만 먼저 도발해서도 안됩니다."
트라야누스 - 죽은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개선식은 869년의 로마 역사상 처음이었다.
`도무스`는 시내의 개인주택을 뜻하고, `빌라`는 교외의 단독주택을 의미...
로마 병사와 다른나라 병사 사이에 뚜렷한 격차가 생기는 것도 바로 그런 점이다. 그들에게 군사훈련은 피 흘리지 않은 실전이고, 실전은 피 흘리는 훈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선 가능 한 많은 정보를 모으고, 그것을 토대로 정황을 판단하고, 그 판단을 토대로 계획을 세우고 , 그 계획에 따라 행동을 개시하는 것이 로마 민족이다.
하드리아누스는 유대교도의 할례를 금지했다.유대교도에게 할례는 자신이 유대교도임을 육체에 각인 시키는 중요한 일이지만 , 유대교를 믿지 아니한 사람에게는 쓸데없이 육체를 손상시키는 야만적인 습관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자가 남자의 마음을 잡아두기 위한 최선책은 남자 곁에 계속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자 곁을 떠나는 것이다.따라갈 수도 없는 곳으로 영원히 떠나버리는 것이다.
하드리아누스가 탄압한 것은 로마의 통치에 반항하는 유대교도 뿐이었고, 반항하지 않은 유대교도는 탄압하지 않았다.로마에 대해 점점 급진화하는 유대 과격파와 결별한 유대인들이 당시의 기독교도였다. 기독교도는 로마의 통치에 반항하지 않았다.따라서 그들은 예루살렘에 계속 살 수 있었다.
네로와 도미티아누스는 죽은 뒤에 로마인에게는 무었보다 불명예스러운 `기록말살형`에 처해졌다. 기록말살형이 원로원에서 의결되면 , 생전의 모든 업적은 공식 기록에서 말소되고, 초상은 파괴되고, 비문도 그 이름 부분만 지워진다.
하드리아누스 : "속주민들이 로마로 대표를 보내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호소한 것이 아니라, 황제가 친히 속주를 돌아다니며 속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과 식량을 확보하는 것인데, 안전이 보장되어야만 비로소 식량도 보장된다고. 따라서 평화야말로 최고의 가치라고.